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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t Issue(종합)★/Hot Issue(드라마)

사의 찬미 윤심덕 미스테리

이미지 출처=과거 김우진 윤심덕 기사

이미지 출처=드라마 '사의 찬미' 신혜선



조선 최초의 소프라노 윤심덕(신혜선)과 천재극작가 김우진의 비극적인 사랑과 또 대중들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은 김우진(이종석)의 작품 세계를 재조명한 것으로 알려져...방송전 부터 많은 관심을 받았던 SBS 드라마 '사의 찬미' 가 27일 화요일 드디어 첫 선을 보였는데요.


이미지 출처=드라마 '사의 찬미' 



'사의 찬미' 첫 방송에서 김우진(이종석)과 윤심덕(신혜선)은 신극을 준비하며 홍난파(이지훈)의 소개로 첫 만남을 가지게 되었고 서로 티격태격하며 좋지않은 첫 인상을 남겼지만...이 후 자신의 생활비를 쪼개 신극공연으로 조선 사람의 얼이 살아있음을 보여주려는 김우진의 열정과 천상의 목소리로 아름답게 노래하는 윤심덕에게 서로 반하게 되는 모습들이 묘사되었고...마지막 공연까지 모두 마쳤으나 결국 일본 경찰에게 끌려가 모진 고문을 당하고 풀려난 김우진의 모습까지 방송되었으며 다음회를 더 기대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미지 출처=드라마 '사의 찬미' 신혜선 이종석


그렇다면 '사의 찬미' 드라마에서 배우 신혜선이 연기한 윤심덕은 누구이며? 역사를 대표하는 비극 로맨스로 그 당시 대서특필되었던 김우진과 윤심덕의 '죽은이유:정사 사건' 은 과연 진실일까요?  먼저 윤심덕에 대해 알아보자면...1897년 평양의 그리 넉넉하지 않은 집안에서 4 남매 중 둘 째 딸로 태어났지만 기독교 신자였던 부모님의 영향으로 신식 교육을 받으며 자랐고 어렸을때 부터 음악에 상당한 재능을 보였습니다.



이미지 출처=드라마 '사의 찬미' 신혜선


경성 여자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한 윤심덕은 약 1년 간 학생들을 가르쳤지만...뛰어난 음악적 재능을 인정받아 조선총독부에서 주는 장학금을 받고 일본으로 건너가 조선인 최초의 유학생이 되었는데요. 일본에서 성악을 전공한 그녀는 음악 외에도 여러 방면에 다재다능하고 큰 키에 서구적인 스타일과 일반적인 여성같지않은 활달한 성격으로 도쿄 유학시절 여러 남성들의 동경의 대상이 되었는데...대표적으로 채동선,홍난파 등이 그녀를 많이 좋아했었고 박정식은 용기를 내 윤심덕에게 구애했다가 거절당한 후 상사병으로 정신이상 증세까지 보였다고 합니다.



이미지 출처=드라마 '사의 찬미' 신혜선


이렇듯 만인의 연인이었던 윤심덕의 마음을 사로잡은 인물이 바로 김우진이었는데...1921년 일본 유학생들이 결성한 순례 극단 동우회에서 처음 만난 두 사람은 약 2달 동안 한국에서 순례 공연을 하면서 급속도로 가까워졌습니다. 윤심덕과 반대로 조용하고 차분한 성격의 김우진은 전라도 거부의 맏아들로 당시 와세다 대학 영문과에 재학중인 수재였으나 애석하게도 고향에 이미 정혼한 부인이 있었는데요.



이미지 출처=드라마 '사의 찬미' 신혜선 이종석


그 당시 조혼의 풍습으로 가문 좋고 고전적인 여인과 정략 결혼을 시킨후 신식 교육을 위해 유학을 보내는것이 일반적이었기 때문에...김우진이 진짜 사랑한 사람은 윤심덕이었고 또 김우진은 문학과 연극에 매진하고 싶은 예술가로서의 꿈을 가지고 있었지만...집안에서는 예술가로서의 아들의 꿈과 행보를 아예 인정하지 않았고 고향으로 돌아와 집안의 재산만 관리하기를 바랐습니다. (이러한 여러 요인들이 후에 '정사 사건' 의 원인이 되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음.)



이미지 출처=드라마 '사의 찬미' 신혜선 이종석



1923년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윤심덕은 같은 해 6월 '동아부인상회 3주년 창립 기념 음악회' 에서의 독창공연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성악가로서의 활동을 개시하였지만 성악가 활동만으로는 생활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극단 토월회 배우,학교 음악선생님,대중가요 음반취입 등 여러 일을 병행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1926년 7월 일본 오사카의 닛토레코드 회사에서 음반취입 의뢰를 받고 일본으로 건너간 윤심덕은 그곳에서 지금까지도 유명한 '사의 찬미' 란 노래를 녹음하게 되는데...이 음반의 판매량이 그 때 당시로서는 정말 어마어마한 10만장을 기록하였다고 합니다.(얼마 후 그녀의 죽음이 판매량에 큰 영향을 주었다는 것이 정설)



이미지 출처=사의 찬미 음반


이미지 출처=드라마 '사의 찬미' 신혜선 



한 편 그즈음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사사건건 막으며 인정해 주지 않는 아버지에게서 벗어나기위해 고향에서 가출해 도쿄에 머물고 있던 김우진에게 "저를 보러 오사카로 오세요. 오지 않으면 자살할거에요." 라는 윤심덕의 전보가 도착했고 부랴부랴 그녀를 찾아가 대화를 나눈 두 사람은 1926년 8월 3일 부산으로 가는 부관연락선에 함께 탑승하게 되는데요. 그러나 다음날 김우진과 윤심덕은 현해탄을 운항중이던 배에서 감쪽같이 사라졌고 당시 언론은 이를 두고 조선 최초의 (정사 사건:남녀가 사랑을 이루지 못한 것을 비관해 동반 자살하는것)이라고 대서특필하였습니다. (이것이 대중들에게 거의 정설로 굳어짐.)


이미지 출처=과거 김우진 윤심덕 기사


이미지 출처=부관 연락선


그러나 이 사건을 찬찬히 뜯어보면 여러 의문점들이 생기게 되는데...먼저 두 사람이 자살하는 장면을 목격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고 시체도 찾지 못했으며 유언장도 언론의 보도와는 다르게 없었습니다. 이 사건에서 우리가 알 수있는 확실한 사실은 ⑴8월3일 김우진과 윤심덕이 일본에서 부산으로 가는 같은 배를 탔다는 것 ⑵8월4일 새벽 대마도를 지날 무렵 선실의 문이 열려있는 것을 발견했을때 가방만 있고 사람은 없었다는 것 ⑶도착 후 승객명부를 대조해 보니 윤심덕과 김우진이 없었다는 것 등인데요. 



이미지 출처=드라마 '사의 찬미' 신혜선 이종석


이런 정황들만 가지고는 두 사람이 확실히 정사를 했다고 보기에는 어려운 점이 있으며 그래서 차후에 이 사건에 대한 여러 주장들이 제기되었는데...⑴실족에 의한 사고설: 당시 두 사람이 각자 희망을 가지고 열심히 사는중(⊙김우진:독일유학 예정,희곡 '산돼지' 탈고 윤심덕: 음반 취입,동생 8월5일 미국유학 예정)이었고 충분히 이혼하고 재혼할 수 있는 상황이었으며 유서도 없었고...배에 탄 것이 확실히 확인된 상황에서 바다 한 가운데서 다른 곳으로 도망 갈 수도 없기때문에 모든 정황상 그냥 불행히 급작스런 사고를 당한 것이라고 밖에는 볼 수 없다.



이미지 출처=과거 김우진 윤심덕 기사


⑵생존설: 1931년 이탈리아의 한 잡화점을 운영하는 동양인 부부를 보았는데 그들이 윤심덕과 김우진이었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고 간판명부터 구체적인 지명까지 자세하게 언급되면서...이와 관련해 사실은 두 사람이 선원을 매수해 자살로 꾸민 후 중국으로 건너가 중국인으로 위장하고 유럽으로 건너갔다는 구체적인 방법까지 회자되었다. 그러나 이 소문을 듣고 김우진의 동생이 주 이탈리아 일본대사관에 확인을 요청했을땐 '로마에는 그런 사람들이 없으며 앞으로도 찾아보겠다.' 라는 통보만 받았다.


 


⑶타살설: 윤심덕의 음반을 취입한 닛토레코드는 당시 일본 국영축음기 회사인 닛지쿠의 자회사로 1926년에 생긴 무명의 회사였는데...음반의 타이틀곡으로 내 놓았던 '사의 찬미'는 원래 그녀가 부를 노래가 아닌 상황에서 레코드 사가 갑자기 추가하였으며 그녀의 죽음 이후 음반 판매량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였다.(죽음을 찬미한다는 뜻을 가진 우울한 노래인 '사의 찬미'를 부른 가수가 자살하면 크게 이슈가 되어 조선 시장에 축음기와 레코드(음반)를 대량으로 판매해 회사를 성장시킬수 있다는 계산하에 레코드사가 자살로 위장해 타살을 했다는 주장) 등이 있습니다. 과연 여러 의문이 생길수 밖에 없는 이 미스테리한 사건의 진실은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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